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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을 예감해본 적이 있나. 심포니를 듣다가 절정으로 치달을때, 영화가 막바지로 흘러갈때, 관계가 산산조각이 나 서로 눈치만 보고 있을때.

그리고 막상 끝이 왔을때, 그 결말 혹은 종말에 대해서 재구성해볼때 그 재구성은 얼마나 사실에 가까울까. 결말의 주체가 내가 아니라 남일 경웨, 내가 그 끝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얼마나 사실에 가까울수 있을까.

부정확한 기억과 불충분한 문서 위에 세워진 확신. 이라는 에이드리언의 역사에 대한 정의는 그 자신의 죽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는 삶이 바란 적이 없음에도 받게된 선물이며, 사유하는 자는 삶의 본질과 그 삶에 딸린 조건 모두를 시험할 철학적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그가 쓴대로 한번도 원한적이 없지만 주어진 선물같은 삶.에 대해 자유의지로 할수 있는 가장 분명한 일이 그 삶을 끝내기 위한 행위로 기억될 죽음.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죽음이, 진실이, 사실이 이렇게 한 겹 벗겨내면 바스라질 껍데기로 기록되고 기억되어 왔을까.

기억은 언제나 100% 정확할 수 없으며, 이를 보충하기 위해 생산되는 문서는 언제나 불충분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부정확함과 불충분함에 기대어 기억되는 개인의 혹은 사회의 역사는 언제나 살아남은 자들의 회고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가진 기억은 언제나 반쪽의 기억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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