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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을 숨죽여 읽은 기억에 별 고민없이 집어든 정유정 작가의 신작은 하얀 설원의 죽음에서 시작해 검은 불구덩이의 죽음으로 끝났다. 죽음으로 시작해 죽음으로 끝나는 소설. 개들의 죽음에서 시작해 인간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소설. 인간과 자연이, 우주가 맺고 있는 지금의 관계에 대해 말하는 소설.

남자가 있다. 썰매개를 이끌고 경주에 참가하다, 썰매개들을 늑대 먹이로 던져주고 혼자 살아남은 남자. 그 상처를 안고 속죄하듯 유기견들을 치료하고 돌보며 사는 서재형. 이런 그를 개장수로 전락시킨 기자 김윤주. 서재형이 가장 아끼는 썰매개 쿠키를 죽이려 눈이 뒤집힌 정신병자 박동해. 서재형의 또다른 썰매개 스타와 스타를 사랑하는 투견 링고. 그리고 개들에게 물어뜯겨 죽은 자신의 아내에 대한 복수로 스타를 죽인 소방서 대원 한기준.

개와 사람이 원수로, 연인으로, 살인자로, 구원자로 뒤얽혀 이야기는 돌진한다. 전염병에서 집단 감금과 몰살로, 개에 대한 원한에서 살인으로, 이야기는 눈두덩이처럼 굴러가 희망을 뭉개버린다.

향수, 눈먼자들의 도시 처럼 전염병이나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집단 광기를 그린 흡입력 있는 이야기들은 많이 있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쉽고, 이야기를 끌고나가기도 비교적 수월할 것이다. 28은 여기에 인간이 동물을, 자연을, 우주를 어떻게 대상화 하고 타자화 하여 폭력적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인간들 사이에서 까지 쉬이 일어나는 대상화와 이에 수반하는 폭력을 그려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내내 불편하게 떠올릴 수 밖에 없는 사건들을 우리는 너무나 여러가지를 알고 있지 않은가.

살아남은 이는 한기준과 김윤주 기자. 한기준은 아내를 개 때문에 잃고, 서재형이 가장 아끼는 개 스타를 죽였다. 서재형은 그런 한기준을 링고로 부터 구하고 대신 죽는다. 김윤주는 알래스카에서 돌아와 속죄하는 마음으로 트라우마를 안고 간신히 살아가던 서재형을 기사 하나로 몰락시키고, 또다시 기사 한줄로 화양의 수많은 개들을 몰살시키는데 일조한다. 하지만 그녀는, 서재형의 곁에서 화양의 중심에서 개들의 살려달라는 외침을, 화양 시민의 살고싶다는 외침을 들으며 변하고, 살아남는다.

구원과 사랑이라는 뻔한 결말이지만, 이것 말고 우리가 이 세상의 모든 절망 속에서 건저낼 게 또 뭐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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