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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 하루키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는 이들이 일부 있다. 그들의 평소 문학적 취향과 하루키가 가지는 대중적 문화 코드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거라 지레 짐작해본다.

나에게 하루키는 그냥 일본 소설가다. 오쿠다 히데요와 별로 다를바 없는. 마음의 울림과 성찰을 찾기 위해 집어드는 책이라기 보다 그냥 재미로 읽는 책. 여기에 가장 잘 부합한 책이 1Q84나 해변의 카프카 같은 소설들이었고, 기대보다 좀 나았던것이 상실의 시대와 이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다. 기대보다 마음을 움직인였던 글은 수필 혹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같은 초기 소설들이었다.

하루키 소설에는 어디서 이런 직업을 생각해낸거야 싶은 직업들이 종종 나오는데, 이번에는 역을 설계하는 서른여섯의 남자다. 10대를 함께 보내고 20대를 함께 맞은 가장 소중한 친구들로부터 하루아침에 버림 받은 후 죽음에 대해 생각하다 이겨낸 후 인간관계의 문을 닫고 살아가는 쓸쓸하고 고독한(하루키가 좋아하는) 남자다.

역을 만드는 이 남자는 그 역에서 순례를 시작한다. 그에게 등을 돌린 친구들을 한명 한명 찾아가 그 이유를 묻는 여행을 시작한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지금은 죽고 없는 친구를 보호하기 위해 그를 추방할수 밖에 없었노라 고백한다.

남자셋 여자둘, 연애 감정을 배제하고 그들만의 온전한 세계를 구축한 관계. 다른 누군가를 필요로 하지 않고 그 안에서 (이성적 감정을 제외한) 모든 것이 충족되는 관계라는게 가능하기나 한걸까. 가장 친한 친구가 있지만, 그 친구만으로 충족되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고, 연인이 있다고 친구가 필요치 않은게 아니듯 관계도 하나의 공동체 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있을 수 밖에 없다. 그 모든걸 하나의 관계 안에 가두어 두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폭발의 위험을 안고 있는 관계였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

그 모든 것이 폭발하고 친구들을 잃으며, 그들은 자신들도 상처입었다고 고백했다. 그를 밀어냄으로 인해 자신들도 상처입었으며, 그들 역시 지금은 왕래 없이 지내고 있었다. 그렇게 잃어버린 시간들 잃어버린 관계들을 복기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그들은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그들이 아니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상처입은 후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 밖에 없다. 시간이 흐르듯 관계도 시시각각 변하게 마련이니까.

쓰쿠루와 누군가와의 대화가 이 소실의 중심이다. 대화중 특히 여자들과 나누는 대화가 인상깊었다. 쓰쿠루와 사라의 대화는 좀체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지만 쓰쿠루와 핀란드에 간 친구와의 대화는 마음에 스몄다.

어떤 관계가 치명적인 오해를 겪고 20여년이 지난 후 나눌수 있는 최선의 대화라는 느낌이었다고 하면 너무 과장이 심한가. 이런 오해의 원인을 끊임없이 자신에게서 찾으려는 쓰쿠루와, 이런 그에게 가서 그들과 이야기 해 보라며 등떠미는 사라. 나는 어느쪽일까. 오초도 고민할 필요가 없이 사라 쪽이다. 문제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으려고 하는 것은 언제나 가장 나중에 해왔다. 내가 바뀌면 관계를 개선할 수 있다는 믿음 보다는 상황이 변하고, 상대에게 변화가 생겼으니, 나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지 않은가, 하며 놓아버리는 회의주의자가 여기 있다.

쓰쿠루는 그 원인을 자기 안에서 찾으려 하며 긴 시간을 자기 안에 갇힌채 보낸다. 그런 그를 향해 사라는 이제 그만 그 안에서 나오라고 말하는 대신, 순례를 떠나도록 쓰쿠루의 등을 떠민다.

나는, 남탓 상황탓 그만하고 이제 그만 내 안을 조금 들여다봐야겠다. 이제 서른이니까.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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