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가죽공예002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가. 미술시간에 그림을 그려 내고 선생님이 채점을 하고 모두에게 나눠주셨다. 이름을 써 내지 않은 그림 몇 장을 칠판에 올려 놓고 찾아가게 하고 있었는데, 내 그림이 있길래 찾아 가려는데 선생님이 한마디 하셨다. “어머, 그 못그린 그림 니가 그린거였니?”

분명 나쁜 의도는 아니었을 거다. 다른 과목에서 그럭저럭 우수한 모범생 놀이를 하는 학생의 그림이 의외로 별로여서 놀라움에 무심코 던진 한 마디였을 것이다. 나는 집에 와서 엄마에게 오늘 있던 일을 얘기하며 그 일화를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고, (엄마는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동양화를 꾸준히 그리고 있다) 충격에 휩싸인 엄마는 나를 곧 화가의 아뜰리에로 보냈다.

그곳은 입시 미술을 준비하는 언니들이 이젤을 놓고 데생을 하거나 수채화를 하는 곳이었고, 군데 군데 선생님의 작품도 있는 작은아뜰리에였다. 그곳에서 4학년 무렵부터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림을 그렸다. 처음 한달 정도는 선만 그렸던 것 같다. 선을 그리다 원뿔, 직육면체 같은 석고상을 데생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아그리파상 같은 어려운 석고 뎃생도 곧잘 했다. 데생을 한참 하다 어느순간부터 선생닝은 나에게 정물화를 그리게 했고, 색깔도 쓰게 되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곧 나를 반 추상의 세계에 입문시켰다. 정물을 그리되 색은 너의 마음의 색을 칠해라.. 뭐 이런식이었던 것 같다.

2년 반이나 입시 미술학원을 다녔지만, 중학교때는 간신히 그림 못 그린애를 벗어난 정도였는데, 고등학교때  유일하게 내신 1등으로 졸업한 과목이 미술이었다. 고등학교때 미술 선생님은 상당히 감정 기복이 심하고 평판이 좋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우리에게 늘 추상 미술을 시켰고, 나는 이런걸 이미 초등학생때 ㄱㅍㅅ 아뜰리에에서 배웠었다. 그때가 유일하게 “아 내가 미술을 잘 하기도 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가죽 얘기를 한다는게 미술학원 얘기만 늘어놓고 있다. 가죽공방을 찾아보게 된건 그냥 뭔가 집중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일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시간이 남아 돌았던 아니다. 데이트도 해야 했고 책도 읽어야 했고, 영화도 봐야 했지만 이때 유독 손을 쓰는 일을 하고 싶었다.

 

가죽공예020 가죽공예019

 

첫날. 가죽을 고르고 가죽을 자르고 바느질을 했다. 가죽을 고르는 일은 수월했고, 가죽을 자르는 일은 힘들었고,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그러나 바느질은 재미있었고, 색깔을 칠하는 일은 어려었지만 할 만 했다. 이날 처음 배운 새들 스티치는 놀랍게도 바늘 두개를 사용하는 방식이었고, 에르메스에서 사용하는 그 바느질 방법이다. 그렇게 해서 만든 첫 작품. 일년 가까이 내 카드지갑으로 사용하고 있다.

 

가죽공예014

 

두번째 주는 좀 더 수월했다. 첫 날 보다는 가죽칼 쓰는게 수월했고, 만들고 있는 지갑의 가죽과 스티치의 색깔도 마음에 들었다. 만들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 수록 만드는 일이 즐거워 지는 것 같았다. 두번째 만든 건 남자 반지갑. 이 지갑은 잘 가지고 있다 남자친구 선물로 줬다. 지금 남편이 된 당시 남자친구는 처음엔 내가 만들었다는 걸 믿지 못했고, 나는 그 다음주인가 남자친구를 공방에 데리고 갔던 것 같다. 이 지갑은 지금도 잘 쓰고 있다. 남편은 지갑이 가죽 느낌도 좋고 사이즈도 좋다며 매우 만족해 하며 가지고 다니는데 진심인지는 잘 모르겠다. 뭐 아니어도 지금처럼 잘 가지고 다니면 상관 없다.;

 

가죽공예016

 

세번째로 만든 파우치. 이건 만들때도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아서인지 유난히 바느질이 지겨웠는데, 역시나 만들고 나서 어디뒀는지 모르겠다.

 

가죽공예003 가죽공예006

 

처음 가죽공방을 다니려고 알아보니 공방이 꽤나 많았다. 지금 다니고 있는 공방을 선택한건, 여기서 만드는 제품들의 디자인이나 색감이 제일 좋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미니백을 만드는 과정이 있다는 것도 공방 선택에 기여를 했다. 2012년 여름, 어마무시한 행사를 낑낑대며 준비했었는데, 행사 전 날 야근을 위해 밥먹고 백화점 한번 둘러보다 생로랑의 베티백을 충동적으로 구입했었다. 살까말까 고민하던 가방이긴 했는데, 그날 무언가를 사야만 했다. 그래야 폭발하지 않고 내일, 모레를 무사히 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때마침 당시 남친이었던 남편이 출장가면서 주고 간 카드도 내 지갑에 있었다. ㅋㅋ  베티백의 디자인을 닮은 미니 체인백을 공방에서 내 손으로 만들었다.

이 때 정말 힘들었다. 내가 고른 저 가죽이 스티치가 거의 보이지 않는 종류의 가죽이었고, 가죽이 얇아 보강재도 대고하느라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갔다. 가방을 완성하기 위해선 앞판과 옆판과 밑판을 연결해야 하는데, 그 작업을 일일이 바느질로 해야 하니 힘이 들만도 했다. 그렇게 낑낑대며 완성한 핸드메이드 베티는 지금은, 엄마에게 빼…빼앗겼다. ;ㅁ;

 

가죽공예001 가죽공예011

 

두번째로 만든 가방은 클러치.  역시나 백화점 돌아다니다 CK에서 마음에 드는 디자인의 클러치를 발견했고 살까 하고 이리저리 보다가 에라이 만들기로 했다. 몰래 사진 몇장 찍어 공방에 가져왔다. 가죽을 골라 같은 모양으로 만들었다. 저 옆에 둥근 마감 부분이 어려워서 애를 많이 썼다. 뭘 하나 만들어도 손이 많이 가고 힘들긴 하지만, 이렇게 해놓고 나니 너무 좋아서 한동안 매일 들고다녔다.

 

가죽공예022 가죽공예018 가죽공예004

 

이건 클러치 하나, 미니백 하나 만든 주제에 겁 없이 시도한 서류가방이다. 남편이 들고다니는 서류가방은 샘소나이트에서 만든 가죽이 아닌 재질로 된 종류인데 가볍기는 하나 그닥 예쁘지 않고, 가죽가방을 하나쯤 사주고 싶었다. 근데 웬만한 가격에 그닥 마음에 들지도 않는 가방을 사느니 내가 만들어주자!는 얼토 당토 않은 마음이 생겨버렸고, 만들기 시작해 버렸다. 가방을 그리고, 재단용 판떼기 만들고, 소 한마리분이 가죽을 사서(가방 들고다닐 남편이랑 같이 가서 직접 고르셨다) 자르고 박고 꿰메기를 2달. 정말 꼬박 두달을 걸려 완성했다. 내 것도 아닌, 남자용 서류가방을 만들다 보니 영 흥이 나지 않고 지루하고 힘들었던 두달. 이제 별로 남의 것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큰일이다.

 

가죽공예007

14_07_05_19_15_51_69351504_1141616124

 

힘들긴 했으나 만들고 나니 뿌듯하긴 하다. 저 큰 가방 일일이 손바느질 하느라 정말 고생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니셜도 하나 박아줬다. 자, 이제 퇴직할때 까지 들고 다니셔!

가방을 선물하니 헤헤 좋아라 하면서, “남은 가죽으로 나 명함지갑도 하나 만들어줘-” 하는데, 어찌나 저리 천연덕스럽게 뻔뻔한지… 다음에 다시 데려가서 가죽에 구멍뚫기라도 시켜야겠다.

 

Advertisements

4 thoughts on “2014. 7. 6 – 손을 쓰는 일.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