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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쇼핑목록에 한번도 들어간 적이 없는 품목 중 하나 그릇이다. 엄마집에 살때는 유리컵이 바뀌는지, 새 찻잔을 샀는지, 냄비가 몇갠지 따위에 관심이 있을리가 없었고, 결혼해 독립해 나올 때도 그릇은 엄마가 엄마 취향으로 사준 것들을 고대로 싸들고 왔다.

그 그릇들을 하나 둘씩 필요할때마다 풀어서 정리하고 사용하는 것도 남편 몫이었다.

그러다 내 공간이 정돈되고 나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더 잘 즐기기 위해 있으면 좋을 것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온 것 같다. 그래서 사게된 처음 산 그릇은 이딸라의 티마. 아주 깔끔한 남색의 커피잔 두 조. 봄/여름 내내 이 커피잔 하나로 잘 버텼다. 커피도 마시고, 아이스크림도 담아 먹고, 소서에 과자도 담아먹고 하면서.

그러다가.. 결국 이런걸 봤다. 아라비아핀란드의 빈티지 그릇들.  이름도 예쁘다 Meri. Arabia finland사의 그릇이고, 지금은 생산하지 않는 빈티지 그릇이다. 즉 중고. 누군가 사용하던 그릇을 산다는게 어쩐지 좀 찜찜하긴 했지만, 곱게 포장되어 내 손에 들어온 이 그릇은 기대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보기와 달리 가볍고, 커피를 담기에 크기가 적당하고 자꾸 보아도 질리지 않는 예쁜 색감을 가졌다. 엄마가 사준 도자기 그릇들과도 무난하게 어울린다. 그래서 우리집에 온 이래로 매일매일 사용하고 있다. 모닝커피는 메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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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이 예뻐 어디에 올려놓아도 인테리어 같다.안에 든 건 Alex the coffee 에서 사온 과테말라로 내린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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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아침에 슈톨렌도 조금 썰어 먹었다. 조금 썰었는데 안에 과일이 꽉 채워져 있어 그런지 무척 배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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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에티오피아 예가체프로 내린 커피. 역시 Alex the coffee에서 사온 원두. 원두가 매우 잘 부스러지도록 로스팅이 되어 있어 그라인더를 조금 조정해서 갈아야 내 입맛에 맞는 예가체프가 나온다. 산미와 초콜릿맛이 서로 이기겠다고 비등비등 싸우는 그런 맛.

그런데 보니까 집에서 커피만 마시는게 아니다. 오전엔 커피를 마시지만, 저녁엔 주로 차를 마신다. 게다가 집에 변변한 티팟이 하나도 없다. 차는 하니앤손스부터 지인께서 손수 만든 차며, 마리아쥬프레르에 이르기까지 종류별로 뺴곡히 있는데 티팟이 없는건 말이 안된다며 하나 들여왔다. 마침 마음에 쏙 드는 물건이 나왔다.

은은한 색감이 우아한 형태와 아주 잘 어울린다. 그릇이 먼저 있던게 아니라 어느 화가의 두꺼운 유채 그림 속에 있던 그릇을 누군가 만들어 놓은 것 같은, 그림같이 에쁜 티팟과 잔. 역시나 Arabia finland사의 우투아 라인이다. 우투아는 가지고 있는 티팟&넓은 티 잔 말고도 머그, 데미타세 머그, 디쉬를 모두 모으고 싶다. 여유가 될 때마다 하나씩 사 모으면 언젠간 다 모이겠지. 그럴려면 빨리 찬장을 비워야 하는데, 엄마가 준 그릇부터 깨먹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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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팟 하나와 잔 두개를 주문했을 뿐인데 소포가 이만큼 왔다. 포장 하나 하나가 너무 정성스럽고 예쁘다. 예전에 독일에서 유학중이던 친구가 보낸 소포도 딱 이런 느낌의 포장이었는데, 알고보니 내가 그릇을 구입한 곳의 사장님들도 독일 유학시절 그릇을 모으다 판매하게 된 것이라 한다. 독일사람들의 정성이 묻어난 포장의 정석이 이런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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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르르 달려와 이게 뭔가, 내껀 없나 하고 둘러보는 박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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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도 킁킁 맡아보지만 그거 니꺼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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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만 봐도 기분이 좋다. 안엔 얼마나 더 예쁜게 들어있을까! 볼메이슨 jar에 담긴 초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보내주셨다. 직접 만든 향초라고. 향은 에르메스의 Un Jardin. 초 포장이랑 어울리는 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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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때마다 차를 우려내고 싶게 하는 마법의 티팟. 색감이며 곡선들이 아름답다. 보고있으면 같이 차분하고 온화해지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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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껀 하나도 없다는걸 깨닫고 시무룩해진 박미달. 언니가 맨날 니네껏만 사다 얼마나 오래만에 내꺼 산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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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서 “우아함”을 맡고 있는 박영달님도 합세하셨다. 마징가 귀를 하고 킁킁 검사하는중. 택배 뜯는 동안은 저게 뭔가 무서워서 숨어 있었다는건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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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달아 그안에 아무것도 없어… 요새 사람 물컵만 보면 달려들어 한두모금씩 할짝대며 물먹는 재미를 들이셨다. 그래서 난 매일 영달이가 침발라 놓은 물을 마신다. 나 이래도 괜찮으거겠지…? 얘네한테 이상한거 먹이는거 아니니까,,,, 괘,,,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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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새 자기꺼 아닌줄 알고 돌아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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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이 한번 씻어 차를 우렸다. 마리아주 프레르의 러시안 브랙퍼스트 티. 프렌치 브랙퍼스트 티는 나도 가지고 있어 자주 마시는 편인데 러시안은 처음이다. 향이 제법 강하지만 다행히도 모스크바의 향이 나진 않았다. 모스크바 역사 박물관 방명록에는 “징글징글 모스크바 다시는 안와!”라고 한글로 적혀있다. 왜 그랬냐고..? 9월 어느 을씨년스런 날에 다크가 무릎까지 내려온채 고집불통에다 제멋대로인 루스께 아저씨들과 싸우며 2박 4일 출장 다녀오는 길이었다. 달리 뭐라고 쓰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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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내가 좋아하는 것들, 사랑하는 것들을 차곡 차곡 모아둔 우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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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에 걸렸다고 하니 ㅇㅁ 언니가 엄마가 직접 만드신 도라지꽃차를 나눠줬다. 얼씨구나 하고 받아와 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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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우리고 나서 한참을 넋놓고 보기만 했다. “이건 사람이 마시는 것의 색이 아니야. 어디서 레골라스나 아프로디테같은 요정 혹은 신이 마시는 차의 색깔이 이럴거 같지 않아?” 라고 주절주절 영달이한테 말을 걸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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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짙게 우리면 이렇게 푸른 잉크빛이 난다. 이것도 역시나 지상의 음료가 아닌 그런 색이긴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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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꽃차 덕분인지 감기는 얼추 다 나았다. 너무 예쁘다. 차 덕분에 내 찻잔도 더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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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투아 티잔의 소서는 크기가 조금 커서 아침에 빵접시로도 자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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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며, 아무것도 안사려고 했는데 백화점 돌아다니다 결국 리스를 하나 샀다. 초를 잔뜩 켜고 마리아칼라스 음반 하나 걸어놓으니, 신라호텔 저리가라다. (크리스마스때 신라 가서 하루 자고 올까 했는데 1박에 64만원. 그냥 60만원어치 장 봐다가 집에서 먹고 놀기로 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침대 시트는 아무도 안갈아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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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 아마 오늘 저녁도 초를 켜두고 좋은 음악과 함께 고기를 구워 먹고 마주 앉아 티 타임을 가질 것이다. 영달이와 미달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얼마나 좋은지, 남편과 내가 나누는 평온한 일상들이 얼마나 행복한지에 대해서 밤이 깊도록 이야기할 것이다. 메리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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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2014. 12. 24 – home, sweet home.

  1. 그래그래! 따뜻하고 넓은 내집이 있는데 뭐하러 굳이 신라호텔을 !!!! (그래도 파크뷰는 가고싶당….)ㅋㅋ 그나저나 이쁘리. 그날샀던 리스&양초들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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