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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난히 “출근하기 싫어 병”에 시달리고 있다. 난 노동이 싫은 사람이니 기본적으로 출근이 좋은 날은 없다. 다만 회사에 다니지 않으면 안될 몇가지 이유들이 있고, 다행히도 그런 이유들을 충족하는데 크게 부족함이 없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나 이런 시기는 있을 거라 생각한다. 딱히 사무실에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어어엄청 하기 싫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출근”이 하기 싫은 시기. 이런 시기가 입사한지 만 7년이 조금 지난 지금 찾아왔다. 생각해보면 만 7년이나 한 회사를 꾸역꾸역 따박따박 다녔다는게 오히려 신기한 일이니, 지금 내가 이렇게 출근하기 싫은 상태라는 것에 의기소침해 하지 않고 출근을 하지 않는다면 대신 뭘 하고 싶은건지 생각해보기로 한다.

# 우리집에 따뜻한 고양이들과 머물고 싶다. 아침 6시 40분쯤 일어나 8시에 출근할때까지 한시간 반. 저녁에 여덟시부터 열한시까지 세시간. 주중에 고양이들이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은 고작 네다섯시간뿐이다. 그 시간들도 대부분 출근준비를 하거나, 집에 돌아와 씻고 밥을 먹고 책을 읽고 하는 시간들이다. 그 시간 내내 두 녀석은 나를 따라다니거나, 내가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나를 본다. 이 녀석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고 싶다. 조금 더 여유있게 밥그릇을 채워주고 싶고, 투덜대지 않으면서 화장실 청소도 해주고 싶다. 지금은 눈꼽 떼기 전에 부스스 일어나 대충 밥그릇을 채워주고, 퇴근하고 돌아와선 냥냥 대며 보채는 탓에 서둘러 캔을 까서 물에 대애애애충 말아 먹이고 있다. 그게 걔들한테는 식탁이고 밥상인데 급식소에서 식판에 배급해주듯 너무 성의 없이 밥을 먹이고 있달까. 오늘 아침엔 미달이가 낚싯대를 가지고 혼자 놀고 있었다. 놀아달란 표현을 할 줄 모르느 혼자서 그걸 물고 이리저리 레슬링을 하는거다. 영달이는 멀찌감치 보고 그걸 보고 있고. 그래서 아침을 차려먹는 대신 달달이들이랑 사냥놀이를 하다 출근했다. 8시가 되자마자 “누나 이제 가야돼. 안녕” 하고 나왔다. 하물며 고양이 두마리 두고 나오는 마음도 이런데, 사람 아이를 집에 두고 나오는 엄마의 마음은 어떨까 생각하게 되는 아침이었다.

#오후에 차를 마시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프랜차이즈 커피점에서 테이크 아웃 해 급하게 마시는 커피나, 사무실 한켠에 모아놓은 홍차를 우려 키보드를 두드려 대며 차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마시는 그런 차가 아니라 점심과 저녁 사이 배고픈 그 시간에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 놓고 그날 마시고 싶은 차를 우려 천천히 마시고 싶다. 오늘 저녁엔 뭘 먹을지 고민하면서, 오늘 저녁엔 운동을 갈까 말까 고민하면서 차마시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 매일매일 운동을 할 예정이다. 주중엔 요가와 필라테스를 하고, 주말엔 남편과 자전거를 탈 것이다. 회사를 다니며 매일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그만큼 의지가 강하지 않다. 하루에 열시간을 회사에 투자하면서 매일매일 운동을 하기엔 내 몸과 마음 모두 너무 지쳐있다. 출근을 하지 않는다면 에너지를 매일 운동을 하는데 나누어 쓸 수 있을것 같다. 몸을 통해 해소되는 스트레스가 분명 존재한다는걸 요가를 하면서 깨달았다. 몸을 움직여서가 아니라 온 정신을 내 몸에만 집중함으로 인해 덜어지는 마음의 무게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운동을 한다기 보다는 마음의 평화를 위해 몸을 움직인다는 생각으로 요가를 2년 반이나 꾸준히 할 수 있었다. 조금 더 자주 하고 싶은데 출/퇴근을 하는 이상 주2회 이상 꾸준히 운동을 가는 건 무리다. 출근을 그만 두면 매일 조금씩 몸을 움직여 그날의 스트레스를 덜어내며 살 수 있겠지.

# 날씨와 함께 생할하고 싶다. 햇볕이 좋은 봄엔 살랑거리는 스커트에 가디건 입고 산책을 하러 나간다. 가까운 공원도 좋고 좋아하는 커피가게가 있는 골목도 좋다. 햇볕을 받으며 나가 다리가 아프면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책을 읽어도 좋겠다. 비가 시원하게 내리는 여름날에는 집에서 진한 카푸치노를 만들어 마시며 빗소리를 들을거다. 날이 흐리고 추운 겨울 아침엔 이불을 돌돌 말고 늦잠을 자야겠지. 날씨의 영향을 듬뿍 받으며 지내는거, 이건 정말 출근하지 않아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지금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볕이 좋으나 가을바람이 부나 얄짤없이 하루의 대부분을 네모난 사무실 안에 갇혀 지내야만 한다. 그래야 나오는 것이 월급이니까.

# 식생활의 자유를 누릴 예정이다. 출근을 하기 전에 허겁지겁 챙겨먹는 아침과, 내 의지와 전혀 상관없는 메뉴와 사람들로 이루어진 점심, 그리고 퇴근하고 돌아와 지친 마음에 대충 우겨넣거나 원치 않는 자리에 억지로 나가 먹는 저녁. 대부분 직장인들의 평일 식생활은 비슷할 것이다. 출근하지 않으면 여유롭게 커피 한잔 내려 신선한 과일과 빵으로 아침을 먹을거다. 점심은 그날 그날 다르겠지. 보고싶던 친구와 함께 할 수도, 고양이와 마주 앉아 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내가 섭취하고 싶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난 먹는 즐거움에 대한 중요도가 높은편인데, 이 즐거움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식사는 주말에만 할 수 있다. 쌀로 지은 밥을 차려 먹고 싶은게 아니다. 신선한 과일을 그때그때 사다 먹고 싶고, 천천히 자르고 물기를 제거한 상큼한 샐러드를 먹고 싶고, 냉동실에서 꺼내지 않은 음식을 먹고 싶은 거다.’ 삼시세끼 내가 원하는 음식을 내가 원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날이 언제나 올까. 오긴 올까. 그때가 되면 이빨 빠져 틀니하고 유동식만 삼켜야 하는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종종 들곤 한다.

# 배우고 싶은게 몇가지 있다. 우선 불어를 배우고 싶다. 발레를 하고 싶고, 잠시 손을 놓고 있는 가죽공예를 다시 하고 싶다. 그림을 배우고 싶으며 책을 읽는 훈련을 다시 하고 싶다. 물론 회사 다니면서 할 수 있다. 다만 한번에 다 할 수 없고, 오래 지속하기가 힘들 뿐. 주어진 하루의 시간 중 내가 원하는 곳에 쓸 수 있는 시간은 고작 저녁의 두세시간 정도 뿐이다. 그 시간 마다 저런걸 배운다고 생각하면, 배우고 싶은 마음이 쏙 들어간다. 출근을 하지 않고, 배우고 싶다. 저런거 배워서 어디다 써먹을 거냐고? 써먹으려고 배우는거 아니다.

출근을 하지 않게 되면 우선 아주 긴 여행을 떠나고 싶을 줄 알았다. 그런데 쓰다보니, 출근을 하지 않으면 굳이 긴 여행이 필요하지 않은것 같다. 집에 머무는 시간 자체가 행복할테니까. 지금 나에게 여행이 간절한 이유는 출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 넌덜머리 나는 밥벌이를 잊고 일상을 벗어나는 시간이 너무나도 소중하기에 여행을 이렇게 갈구하고 있는 것이다. 출근하지 않는 삶에 대해 생각해보니 여행은 저 뒷자리로 우선순위가 밀려난다.

출근하지 않는 나를 상상해본다.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고양이들과 놀다가 학원에 다니고 가끔 친구들을 만날거다. 할 수 있다. 이렇게 살 수 있다. 다만 여기에 필요한 모든 경제적 부담을 같이 사는 다른이에게 고스란히 넘겨야만 한다. 그래도 마음 편히 살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이렇게 살았던 적이 있다. 6개월 정도 캐나다 빅토리아 섬에서 이런 출근하지 않는 생활을 했다. 매일 아침 일어나 수영을 하고, 신선한 아침밥을 먹고, 대학 캠퍼스에 나가 청강생으로 강의를 한두개 듣고, 책을 읽고 친구를 만나고 소풍을 가며 시간을 보냈다. 나에게 저런 시간이 있었다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저 평온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나는 그래서 “집에서 놀아봐. 한달만 해도 지겨워서 다시 일하고 싶을걸” 하는 말을 믿지 않는다. 출근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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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thought on “2015. 1. 28 – 출근하기 싫어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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