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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하러 갈까 말까 하며 집에 왔는데, 소포가 와 있었다. “벗하고 싶은 마음- 신광현 교수님을 기억하며”라는 제목의 작은 책자였다. 선생님이 돌아가신지 벌써 5년이 되었다니, 살아있는 사람들의 시계는 어찌나 빠른지. 선생님은 내가, 우리가 이렇게 코 앞에 닥친 일에 동동거리며 사는 것 같이 보일때면 “윤경아, 하늘좀봐. 너무 아름답지 않니?” 라든가 “윤경아, 여기 이거 좀 볼래. 꽃이 너무 예쁘게 피지 않았니?” 라든가 하는 말들을 건네며 우리가 잠시 멈출 수 있게, 그리고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그런 분이셨다.

맥주와 간단한 안주거리를 챙겨와 앉아, ‘다들 선생님에 대해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궁금해하며 책을 한두페이지 넘기자 난데없이 선생님 사진이 튀어나왔다.  왈칵 눈물을 쏟았다. 내가 기억하는 선생님 모습 그대로, 고개를 살짝 젖히고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따뜻하게 웃는 모습 그대로의 선생님이 거기 계셨다. 저 모습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얼마나 많은 위로를 얻었는지, 선생님이 어떻게 의지가 되어주셨는지 잊고 있던 기억과 감정들이 한번에 터져나오는 것만 같았다.

책장 한장 한장마다 저마다의 선생님과의 기억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다른 이들의 기억속 선생님 모습이 내 기억속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어 그 모든 이야기들이 나의 이야기 같았고, 나의 기억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어떻게 한사람의 인간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한결같이 아름답게 기억될 수 있는지 놀라웠다가도, 선생님은 그렇게 기억될 수 밖에 없는 분이라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진로 문제로 고민을 하며 끙끙대던 시절에 나도 모르게 선생님 연구실 문을 두드린 적이 있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내가 좋아하는 잔을 하나 고르라고 하시고 직접 우린 차를 따라 주셨는데, 어쩐지 그 차를 한 잔 마시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놓이는 그런 날이었다. ‘선생님 취업해야 하는데 쉽지 않아요.’ 징징. ‘윤경아 니 선배중에 ㅇㅇ라는 애가 있는데 걔가 다니는 회사도 좋은것 같았어.’ 나는 지금 그 회사에 다니고 있다.  진로 라는 거창한 고민이 없이도 ‘선생님 이 페이퍼 안풀려요.’ 라든지 ‘선생님 이거 해석이 안돼요’ 같은 자질구레한 거리들을 가지고도 방문을 두드린 적이 여러번이다. 그때마다 조금도 귀찮은 기색 없이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분이셨다. 그리고 이따금씩 페이퍼를 보낸 메일에 답신으로 본인이 쓰신 글이나 좋아하는 글귀를 ‘네가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 같아’ 하며 보내주시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너무나 학문에 대한 관심이 없었고, 선생님을 인생상담소 쯤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철없는 학생들에게도 그분은 사랑과 관심을 아끼지 않으셨다.

회사에 취직하고 선생님 덕분에 밥벌이 하게 됐다며 식사 대접하고 싶다고 서초동까지 쫄랑쫄랑 쫓아 간 적도 있는데 아마 그게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서 2년쯤 지나 부고를 듣게 되었으니 아마 그날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문집의 책 날개에 선생님은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잘 가르치는 교수’를 넘어 학생들 하나하나를 기억하고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주는 ‘선생님’으로, 언제든지 찾아가 마음을 열고 무엇이든 털어놓을 수 있는 ‘믿을 만한 어른’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학술적 도전을 추구하고 또 장려하는 ‘모험가’로,  분야를 막론한 넓은 식견과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탄탄한 조언과 따뜻한 격려를 주는 ‘지혜로운 인도자’로 수많은 학생들의 가슴속에 남아있다.

정말로 그랬다. 정말로 선생님은 학생 한명 한명에게 한결같이 저런 어른이었고, 선생님이었고, 인도자였으며 우리에게 관심과 사랑을 주셨다.

어느 일요일 친구를 만나러 가는 지하철 안에서 부고를 듣고 그자리에서 엉엉 울었다. 그리고 너무 무서워서 장례식장을 찾지도 못했다. 문집을 읽다 보니 선생님 산소가 판교 어디쯤에 있는것 같은데 올해가 가기 전에 한번 찾아뵈어야 겠다. 선생님 감사해요. 이제 아프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리워요. 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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