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프랑스에 산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내 인생의 시간 중 가장 불확실하고 불안한, 눈이 높게 쌓인 산길을 무거운 짐을 지고 걸어 올라가는데, 이제 좀 올라왔나 싶은 순간 한없이 미끄러지는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1년이 조금 지나고 나니 이제 눈은 좀 녹은 것 같고, 미끄러져도 잠시 앉았다가 혼자 털고 일어날 수 있게 되었다. 리옹에서 살고 있는 18세기에 지어진 건물 옥탑방 창문의 뽁뽁이를 뗐다. 겨울내 뽁뽁이에 가려 보이지 않던 파란 하늘(어차피 흐려서 구름밖에 안보였겠지만)과 생장(Cathedrale St. Jean)의 끄트머리가 보이니 봄이 온 것도 같다. (이렇게 생각하고 가죽자켓 입고 시장에 갔다 얼어죽을 뻔 했다.)

달달이들은 좁은 집에 잘 적응해 지내고 있다. 새벽녘에 창밖에 새가 울면 창문을 열으라며 나를 밟고 뛰어다니고, 학교갔다 집에오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 나를 맞아준다. 어쩌다 집에 있는 날은 영달이가 하루종일 나를 스토커처럼 따라다니며 추르를 요구한다. 모래가 한 봉지에 14키로고, 14키로짜리 택배를 배송료 4유로나 내고 배달시켜도 택배 아저씨는 우리집까지 그 택배를 가져다 주지 않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달달이들을 먹여살리고 있다.

달달이들을 보살피는 것 보다 나를 보살피는데 더 많은 품이 든다. 하루 세끼를 챙겨 먹여야 하고, 더럽고 냄새나는 도시 안에서 같이 찌들지 않기 위해 잘 씻고 잘 입고 다녀야 하고, 달달이들 털에 각막이 부어오르지 않으려면 청소도 열심히 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걸 차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굴러가게 만들기 위해 매일 짐을 이고 지고 귀가 하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지하철은 자꾸 멈추고, 기차는 연착되고, 어느날 집에 전기가 끊기거나 하수도가 막히고, 엘레베이터가 멈추며 지옥이 시작되면 평소의 서너배가 넘는 품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든다. TGV 얘기는 하기도 싫고 지하철만 해도 3월에 두번이나 멈춰서 하루는 40분 걸려 학교에 걸어가서는 늦게왔다고 강의실에 못들어갈 뻔 했고, 하루는 결국 밖에서 15분을 기다려 우버를 탔다. 그렇다. 우버를 불러도 15분이 걸린다. 엘레베이터가 고장났을땐 고치는데 3주 정도가 걸렸고, 우리집은 꼭대기 하녀방이다. 전기는 기숙사에 도착했던 첫날부터 안들어왔고, 이집에 이사와서도 세탁기와 전기렌지, 난방을 동시에 사용한 순간 전기가 나갔다. 예고 없이 온수가 안나오는 채로 며칠이 흘러 기숙사 옆방에 무작정 문두드리고 들어가 남의 방에서 샤워를 하고 온 적도 있다.

좋은점도 있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활짝 열며 미세먼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간혹 짐이 가벼운 날은 좀 걸어서 집에 올 수도 있고, 그러다 보이는 풍경들이 비로소 내가 다른 도시에 와서 살고 있다는 걸 알게 한다. 음식도 빼놓을 수 없는데 빵과 치즈, 버터, 와인, 다양한 confiture와 쏘시쏭들이 없었으면 진작에 짐 싸서 집에 갔을 거다. 좋아하는 음식이 지천에 널려 있어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열심히 먹고 마시고 있는데 그런거에 비해 살이 아주 많이 찌지는 않았다. 그만큼 서울이나 분당에서 살 때 보다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친구와 이야기하며 깨달은 사실인데, 리옹은 동쪽으로 차를 타고 세시간 가면 알프스고, 남쪽으로 기차를 타고 두시간 가면 지중해다. 일년 동안 아직 막세이나 니스 한번 안가봤지만 알프스에는 두번이나 가서 스키를 타고 왔다. 초등학교 5학년때 가기싫다고 몸무림 치는 나에게 억지로 스키강습을 시킨 엄마에게 고맙다고 전화를 할 정도로 아름다운 경험이었다. 4월에 시간이 나면 한번 더 타러 갈 예정이다.

프랑스에 오면 일분 일초가 행복할 것만 같았다. 딱히 프랑스가 좋아서 온 것은 아니지만 일단 출퇴근을 하지 않아도 되고, “공부나” 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여기서 공부가 나에게 주는 스트레스는 전체의 20% 정도이며, 학교 행정이 주는 스트레스가 30%, 프랑스인들이 주는 스트레스 50% 정도 인 것 같다. 이렇게 엉망진창인 사람들에게 이 나라가 가진 자원이 너무 과분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해야 하나. 그러나 프랑스에 살면서 받는 가장 큰 스트레스는 남편과 떨어져 살고 있다는것. 아무리 나라가 거지같고 사람들이 싫어도 남편이랑 같이 살았으면 조금 더 행복했을 것 같다. 그래서 여기 온 것을 후회하느냐면, 그건 아직 잘 모르겠다. 후회의 마음이 들고 괴로울 때 마다 와인을 따며 지낸다고 해두자.

KakaoTalk_20180401_135452984KakaoTalk_20180401_135505004KakaoTalk_20180401_135510494KakaoTalk_20180401_135512855KakaoTalk_20180401_135515442KakaoTalk_20180401_135517893KakaoTalk_20180401_135521716KakaoTalk_20180401_135525716KakaoTalk_20180401_135534000

Advertisements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w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