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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는 영화를 한편도 보지 않았다. 시간도 없었고 더이상의 새로운 일을 감당할 수 없기도 했고, 더빙 영화와 오리지널 버전을 어떻게 구분하는지도 몰라서 영화관에 가지 않았다. 올해가 되어서야 영화를 공부하는 친구를 따라 무려 홍상수 영화(=_=)를 한편 보고, 레이디버드와 콜미바이유어네임을 봤다. 프랑스의 공공장소 중 한국보다 쾌적한 유일한 공간이 아마도 영화관인 것 같다. 팝콥조차 먹는 사람이 거의 없고, 음료도 생수병 들고 들어가 마시는 정도이고, 좌석 간격도 넓고, 거의 대부분의 영화가 전체관람가임에 불구하고 소란스럽지 않다. 콜미바이유어네임도 전체관람가였다. 하지만 영어일 줄 알고 보러 갔는데 영어(불어자막), 불어(자막없음), 이탈리아어(불어자막), 독일어(불어자막)이 섞여 나와 대혼란이 왔으나.. 반바지 미남을 보는데 큰 지장은 없었다. 영화를 한두편 보고 나니 갑자기 영화를 보는 즐거움이 새삼스럽게 기억이 나버렸고 부활절 휴일 동안 작년에 개봉한 영화 중 두편을 봤다. 부러 고른 것은 아닌데 두 편 모두 에이미 아담스가 아주 다른 모습으로 출연하는 영화였다.

먼저 본 작품은 Arrival. 영화를 보다가 내가 이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걸 알게되었다. 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 소설의 세세한 내용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고, 책은 한국에 있고, 다시 읽고 싶은데 전자책을 살까 말까 고민하다 시간이 나면 영화나 한 번 더 보기로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선형적인 시간관 외에 순환적인 시간관에 대한 책을 십수년전 논술 준비하면서 읽은 적이 있다. ‘시계 밖의 시간’ 이라는 제목이었고 내가 논 술 볼때 이런 탈근대를 지향하는 주제가 유행이었다. 이 책에서 순환적인 시간관과 여성의 월경을 연결시켜 설명했던 게 문득 기억났다. 여성-언어학자, 남성-물리학자 라서 에이미 아담스가 언어학자 역을 맡았다기 보다는, 그들의 시간관념을 이해하는 역할이어서 여성이 맡아야 했다고 하는게 더 적절해 보였다.

이 시간관을 이해하는 것이 영화의 핵심이었는데, ‘시작과 끝을 동시에 알고있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혹은 ‘결말을 알고 있어도 인생이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영화였다. 다시한번 이렇게 단정적인 문장을 쓰는게 꺼려지지만 영화를 보고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한 주제가 저 문제였다. 결말, 비극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행복한 순간들을 위해 그 선택을 해야 아름답고 가치있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일까.. 뭐 이런 것들. 결말을 미리 알고 있으면 인생은 무의미한 것일까. 어쩌면 더 유의미하게 살 수도 있지 않을까. 적어도 바보같은 실수들은 하지 않을테니. 하지만 그렇다면 우연에서 시작하는 기쁨, 놀람, 우연은 없을텐데 그래도 인생이 재미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질문들을 끝없이 낳는 영화였고, 아름다운 영화였다. 그들의 문자도 아름다웠고, 우주선도 아름다웠고, 그들을 마주하는 에이미 아담스도 아름다웠다. 그리고 가장 궁금한 것은… 그들보다 멍청한 인류가 3,000년 후에 도대체 어떻게 그들을 도와줄 수 있다는 거지?!!! 인류가 그때까지는 존속하기나 할까..?!!!!

두번째로 본 영화는 Nocturnal Animals.  Singleman을 좋아해서 1-2년에 한번은 꼭 새벽에 술을 마시면서 보게 되는데, 톰포드가 또 영화를 만든줄도 모르고 있었다. 영화의 이야기로서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감각적으로 충만감을 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고 보기 시작했는데, 영화의 반이 텍사스 사막에서의 스릴러여서 조금 당혹스러웠다. 영화가 주는 공포의 상황이 너무 현실적으로 느껴질 수 밖에 없는 공포였다. 제이크 질렌할이 소설을 쓴 수잔의 전남편 에드워드역과, 소설속 토니역을 동시에 맡아 에드워드가 토니인 것 처럼 영화에서 표현이 되는데, 나에게는 토니가 수잔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처럼 느껴졌다. 소설속에서 아내와 딸이 잡혀갔음에도 불구하고 혼자 살겠다고 숨어서 그들을 버린 사람은 토니였고, 영화속에서 소설가로서 재능이 없어보이는데 서점에서 일하며 소설을 쓰는 남편을 떠난 사람이 수잔 이었기 때문이다. 토니는 범죄로 가족을 잃은 희생자로 나오는데 사실 이 범죄로 정말 희생당한 것은 토니의 아내와 딸인데, 토니가 희생자로, 실연당해 상처받은 에드워드로 그려지는 것이 부당하게 느껴졌다.

에드워드가 쓴 소설을 읽으며 괴로워하는 수잔의 모습을 보면 수잔도 토니의 감정에 이입해 소설을 읽지 않았나 싶다. 그런면에서 보면 이 복수는 성공 했다고 봐야 하지만, 19년 전에 떠난 와이프에게 장편 소설을 써서 복수하는 남자…너무나 크리피 하지 않은가.

그래서 이야기는 (나에게) 설득력을 잃었고, 음악도 싱글맨만큼 좋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긴장감 있게 볼 수 있었던 건 에이미 아담스가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고, 톰포드가 곳곳에 흩뿌려놓은 미술작품들 때문이었다. 수영장에 제프쿤스 풍선강아지가 나오고, 갤러리엔 데미안허스트가 있고, 집안, 사무실 곳곳에도 미술작품들이 등장한다.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 있어 찾아보니 Richard Misrach 이라는 사진작가의 Man with rifle 이라는 작품이었다.

 

Richard Misrach_man with rifle

Richard Misrach, Man with rifle, 1984

 

평야에 한 남자가 총을 겨누고 있고, 총을 겨눔 당한 남자가 웃고 있는 사진인데 거의 똑같은 장면이 영화에도 등장한다. 하지만 이렇게 위험과 긴장과 불안감이 느껴지는 작품을 집안에 걸고 싶진 않다. 미술작품만큼 자주 등장하지는 않지만, 콜미바이유어네임의 반바지 미남, 아미 해머가 등장해서 깜짝 기쁨을 주었다. 반바지 미남은 카멜 코트를 입어도 똑같이 멋있다.

Army hammer

배우 얼굴, 이름 잘 구분 못해서 조토끼랑 라이언 고슬링 자꾸 혼동하는데 에이미 아담스 얼굴은 이제 확실히 알 것 같다. 영화 한 번 보기 시작하니 자꾸 보고 싶어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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